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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시간 날 때 들를게요."

 

손을 내려 휴대폰 화면의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정국은 이내 통화목록 가장 위에 적힌 '어머니'라는 글자를 잠시 바라봤다.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매일같이 안부전화 하는 어머니에 대한 부담감과 살갑게 대하지 못한 죄송함이 뒤섞여있었다. 

 

정국은 휴대폰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목도리에 코와 입을 감췄다. 애써 넣었지만 귀는 안 넣어졌다. 차를 두고 출근한 걸 잠시 후회하던 정국은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건물을 나섰다. 제법 매서운 겨울바람이 정국의 귀를 따갑도록 때렸다.

 

젠장할. 눈까지 내린다.

 

 

 

Last Christmas

(지난 크리스마스에)

I gave you my heart

(난 당신께 내 마음을 고백했죠)

But the very next day you gave it away

(그렇지만 바로 다음날 당신은 날 거절해 버렸고)

This year to save me from tears

(이제 난 더이상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게)

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올해에는 정말 특별한 사람에게만 내 마음을 줄 거예요)

 

 

마음을 주긴 뭘 줘 추워 죽겠는데.

 

 

 

어딜 가든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왔다. 쇼윈도 안 가게들은 코든 볼을 걸고, 형형 색깔의 전구에 불을 켜 놨으며, 리스를 걸고, 화려하게 장식된 트리를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두었다. 자녀의 선물을 사가는 행복한 발걸음의 아버지,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멋을 내고 있는 네일샵의 손님, 크리스마스 시즌 머리핀을 꽃아 보며 자지러지게 웃는 여학생들. 저마다 설렘 가득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고 있었다.

 

딸랑 딸랑.

 

"여러분의 작은 손길이 큰 힘이 됩니다." 

 

자선냄비를 빼 놓을 수가 없지. 

 

"선생님. 자선냄비는 함께 하는 사랑실천운동입니다"

 

자신을 겨냥해 하는 말인 것 같아 정국은 말없이 지갑에서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어 자선냄비에 넣었다. 구세군이 감사인사를 건넸지만, 정국은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를 할 뿐이었다. 

 

 

캐롤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이브.

사람들은 들떠있었고, 사랑을 속삭였다. 그 사람들 속에서 정국은 혼자였다.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는 늘 좋지 않은 기억 뿐 이었다.

 

 

 

“산타는 무슨. 그거 다 장사꾼들이 많이 팔아먹으려고 만들어 낸 거야.”

 

크리스마스 산타행사를 위해 부모님이 선물을 준비해서 유치원으로 아이들 몰래 보내달라는 안내문을 엄마가 아빠에게 보여줬을 때, 정국의 아빠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커다란 빨간 주머니를 들고,  ‘울면 안 돼.’ 크리스마스 캐롤과 함께 나타난 빨간 옷을 입은 산타 할아버지는 7살 정국이에게 예쁜 토끼 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늘 누군가 가지고 놀아 색이 바래고, 때가 탄 장난감을 얻어왔던 정국이 처음으로 새 장난감을 갖게 된 날이었다. 실밥이 터지지도 않았고, 솜이 삐져나와 토끼의 배가 쏙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얘들아, 산타 할아버지가 아주 멋진 선물들을 주셨네!”

“선생님, 저는 예쁜 토끼 인형을 받았어요!”

“와 우리 정국이는 산타 할아버지께서 토끼 인형을 선물해 주셨구나! 정국이 닮아서 동글동글 예쁜 토끼 인형이네!”

 

늘 사랑이 부족했던 어린 정국은 항상 자신을 예뻐해 주는 유치원 선생님이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은 토끼 인형을 이야기 해주니 달콤한 솜사탕을 먹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 이거 엄마, 아빠가 준 거 잖아요. 전정국 니꺼는 선생님이 산거래. 니네 엄마가 안 가져와서.”

“준혁아! 아니야.”

“맞는데! 나 원장선생님이 말하는 거들었어요.”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게 아니라 엄마가 주는 건데 정국의 엄마는 안 가져왔다는 준혁이의 말에 어린 정국이는 유치원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의 난처한 표정이 준혁이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걸 말해주었다. 그날 정국이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왜 너희 엄마는 선물 안보내줬어?”라는 질문을 받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사랑하는 유치원 선생님이 한 거짓말 때문에 마음을 닫은 날이었다.

 

정국의 가장 오랜 기억 속 크리스마스는 많은 상처를 남겼다.

 

 

 

어린 정국은 가난했다. 아니, 정국의 부모님이 가난했다. 친구들이 유행하는 장난감을, 브랜드 옷을, 게임을 이야기할 때, 먹고 사는 것이 버거웠던 정국은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었다. 정국도 친구들처럼 치킨, 콜라, 피자, 자장면, 햄버거를 좋아했지만 먹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11살의 크리스마스 이브.

학교에서는 사랑을 전하고 싶은 이웃에게 편지 쓰기를 했다. 이웃이라고 해봤자 주인집 아저씨 뿐 이었던 정국은 잠시 주인집 아저씨를 떠올렸다. 정국을 볼 때마다 "사내자식이 뭐 저렇게 기집애처럼 생겼어?"라고 말하는 주인집 아저씨가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떠오른 건 주인집 아저씨가 키우는 개들이었다. 주인집 아저씨는 개 두 마리를 키웠는데, 개를 키우는 이유는 잡아먹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서 개들을 풀어줬다. 그리고 주인집 아저씨에게 뺨을 맞았다. 하나뿐인 아들이 몸집이 배 이상은 큰 어른에게 뺨맞는 모습을 본 엄마, 아빠는 망설임도 없이 주인집 아저씨에게 자식을 잘못 키웠다며 연신 빌어댔다.

 

 

 

14살이 된 정국이 맞이한 크리스마스는 하얀 눈이 내리던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그 날은 엄마가 붕어빵을 사 주신 날이었다.

 

“우리 정국이 맛있어?”

“응. 엄마 맛있어. 엄마도 먹어”

“아니야. 엄마는 많이 먹었어. 우리 정국이 다 먹어.”

 

하얀 눈이 예쁘게 내리던 14살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그리고 그 날 엄마는 정국이를 두고 집을 나갔다.

 

 

 

엄마가 나간 후 아빠는 매일 밤 술상 앞에 정국이를 앉혀놓고는 “육시랄 년. 젊은 놈에 정신 팔려서 지 새끼도 두고 간 년. 너는 니 엄마 같은 년 만나지 마.”라고 엄마 욕을 했다. 그래도 엄마 잃은 어린 것이 안쓰러웠던지라 정국이에게 집 나간 아내에 대한 화풀이는 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술 상 앞에 어린 아들을 앉혀놓고 술기운을 빌려 아내를 원망했다. 어린 정국이는 매일 술심부름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정국이 아빠의 술상 앞에 앉아 엄마의 욕을 들은지 꼬박 일 년 뒤.

어김없이 술 상 앞에서 엄마 욕을 하던 아빠는 술이 다 떨어지자 “오늘은 그 뭐냐. 그래 크리스마스. 니 애미가 집 나간 날. 딸꾹. 고오얀 년. 나아쁜 년.”이라며 빈 술병을 두드렸다. 작게 한 숨 쉬던 정국이 술심부름을 가기 위해 5년째 입어 빛바래고 헤진 외투를 들자 아빠는 “오늘 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선물 줘야지 아빠가. 술 사러 가지마! 특별히 이 아빠가 다녀올꺼야!”라고 말했다. 그럼 그렇지. 무슨 선물. 기대도 안했다.

 

그리고 그날. 비틀거리는 몸으로 술을 사러가던 아빠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며 음주운전을 하던 외제차에 치여 어린 정국이의 곁을 떠났다.  

 

 

그렇게 정국이는 15살에 혼자가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정국의 아빠를 차로 친 운전자는 세계 자동차 브랜드 1위의 R 회사의 한국지사장의 아들이었다. 음주운전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로 인해 목숨을 잃은 정국의 아버지와 아버지를 잃은 어린 정국에 대한 죄책감으로 정국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리고 후원자 덕분이었는지 이듬해 봄. 열여섯이라는 비교적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 외아들로 입양이 되었다.

 

 

10년이 흐른 현재, 해외 유학에 조기졸업까지 마친 정국은 후원자의 10여 년 전 자신의 후원자가 되어준 자동차 제조 회사에서 대리라는 직책을 가지고 일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낙하산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고, 자신을 더 채찍질하면서 쉼 없이 달려 오다보니 정국의 주변에는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친구나, 연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매년 최악은 아니었으나 좋지 않은 기억을 심어준 크리스마스였다. 그리고 오늘처럼 눈이 내리면 최악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정국의 발걸음은 모래주머니를 단 듯 무거웠다. 15살 이후 크리스마스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운전을 하지도 않고, 버스나 택시도 일체 타지 않는 정국이었기에 오피스텔까지 걸어 가야했다. 분명 회사를 나설 때까지만 해도 함박눈이었는데 진눈깨비로 바뀐 건지 정국의 코트 어깨자락이 젖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에서도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 이래서 크리스마스가 싫다 정말.

 

정국은 진눈깨비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봤다. 정국의 시선은 편의점, 카페 등을 스쳐 길 건너 갤러리에 닿았다.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는 정국이었기에 왠지 모를 이끌림에 길을 건너 도착한 갤러리 입구에는 진눈깨비에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가려진 현수막에「      사진전 첫 번째.」라고 적혀있었다. 사진 찍는 것 또한 관심이 있었기에 정국은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 갤러리 안은 사람이 없는 듯 고요했으나 작가의 취향인 듯 은은한 향기가 났다. 안내 데스크처럼 보이는 작은 탁자에는 브로슈어와 블랙체리 캔들, 그리고 작은 선인장이 있었다.

 

“어으 추워. 다 젖었네.”

 

정국이 젖은 머리를 손으로 털어내다가 몸에 남아있는 찬 기운에 두 손을 마주대고 비비다가 손바닥이 입김을 불어넣고 있을 때.

 

“따뜻한 차 드세요.”

 

들려오는 목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린 정국의 눈앞에는 흰색 셔츠에 흰색 팬츠를 입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을 내밀고 있는 금발 머리를 한 남자가 있었다.

 

....아름답다.

 

정국은 눈앞에 있는 남자의 외모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결코 정국의 어휘력이 약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남자의 외모가, 그 아름다움이 더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시선을 옭아매었던 것 일 뿐.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면서 본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우며, 앞으로도 아 남자보다 아름다운 존재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이 옅어져 갈 때 쯤, 남자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감기 걸리셨어요? 따뜻한 물 많이 드세요.”

 

남자의 목소리 또한 정국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정국은 남자가 건넨 차를 자신이 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사실 정국은 자신이 지금껏 남자를 본 뒤로 남자에게서 단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정국의 시선을 느껴서인지, 다른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저는 여기 사진전을 연 작가 김태형 이라고 합니다.”

“김. .태..형.. 작가님.”

 

너무 뚫어질듯 바라보는 시선 때문인지, 나지막이 불러진 이름이 고막을 지나 나팔관 깊숙한 곳까지 자리 잡는 느낌 탓인지,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태형은 정국에게 머그잔을 내밀었다.

 

"저기 이거"

"아, 네."

 

쨍그랑.

 

머그잔을 내민 태형의 손과 머그잔을 잡으려던 정국의 손이 닿았다. 정국이 놀라기도 전에 먼저 놀란 건 태형이었다. 태형은 정국과 손이 닿자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머그잔을 그대로 놓쳤고, 머그잔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 죄송해요!”

“태형씨, 조심해요!”

“얼른 주울,아!..”

 

태형은 머그잔을 놓치자마자 몸을 숙여 바로 줍기 시작했고, 깨진 머그잔 조각이 위험해보여 정국이 손을 뻗으려던 찰나, 태형의 손이 머그잔 조각에 베이고 말았다. 제법 깊게 베였는지 새빨간 피가 태형의 왼손 검지에서 흐르고 있었다. 순간 정국은 새빨간 피가 흐르는 태형의 왼손을 잡아 상처 난 검지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태형은 자신의 손가락이 쓰라린 것이 깨진 머그잔 조각에 베여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 때문인지, 그도 아니라면 상처 난 손가락이 남자의 입술에 닿아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모든 상황이 믿을 수가 없었다.

 

 

 

태형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이 좋았다. 렌즈에 담긴 세상이 좋아서 열게 된 개인 사진전 이었다. 그리고 사진전을 열게 된 오늘은 새하얀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설렘 가득했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블랙 체리 향 캔들을 꺼내어 전시회장에 좋아하는 향을 가득 채우고, 안내데스크에 선인장을 올려두어 사진전에 올 누군가에게 자신이 느낀 이 행복을 전해주고 싶었다. 누군지 모를 당신도 나처럼 행복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내라고.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 듯 해 따뜻한 차를 건네려고 다가갔다. 밖에 눈보라가 휘날린 건지 안내 데스크 옆에서 검은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젖은 머리카락을 털고 있었다. 따뜻한 차가 필요해 보였다.

 

“따뜻한 차 드세요.”

 

자신이 건넨 말에 돌아본 남자를 본 태형은 잠시 숨을 들이켰다. 남자는 가장 이른 새벽에 풀잎에 생겨난 이슬 같았다.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워 보였다. 그리고 남자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졌다. 아. 이슬이 아니고 에로스라고 해야겠다. 찰나의 순간, 남자는 이슬에서 에로스가 되었다. 아마 렌즈 속 세상이 수천, 수만 가지이듯 저 남자도 수천, 수만 가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남자는 상처 난 자신의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눈앞의 이 이슬, 아니 에로스 같은 남자가 자신의 상처 난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흐르던 피도 사라졌다. 남자의 입 속으로.

 

태형과 정국은 마주보고 있었고, 여전히 태형의 왼손은 정국의 오른손에 잡혀있었으며, 상처 난 검지는 정국의 입술에 닿아 있었다.

 

“저기..”

“아..! 정국이요 전정국.”

“네?”

“전정국이요. 제 이름.”

 

태형의 목소리에 정국의 입술에 닿아있던 태형의 상처 난 손가락은 겨우 떼어졌다. 여전히 왼손은 정국의 오른손에 잡힌 상태였지만. 태형은 소리 없이 작게 정국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리고 정국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느라 움직이는 태형의 입술을 빤히 바라봤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태형의 입술 모양이 어떤지 자세히 보려는 듯.

 

여전히 왼손이 정국에게 잡혀 있음을 느낀 태형은 정국을 바라보다 정국의 입술에 시선이 멈췄다. 정국의 입술이 빨갰다. 아니, 새빨간 피가 묻어있었다. 누구 피 인지 알아채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태형은 정국에게 여전히 잡혀있는 왼손이 아닌 자유로운 오른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정국의 입술을 조심히 쓸었다. 손을 떼려던 순간, 태형의 오른손은 정국의 왼손에 잡혔다.

 

“뭐예요?”

“아.. 피가.. 정국씨 입술에 제 피가.”

 

그리고 태형이 엄지손가락으로 미처 닦지 못한, 정국의 입술에 묻어있던 태형의 피는 정국이 태형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 감춰졌다. 정국의 오른손과 태형의 왼손은 포개어져 손깍지를 끼면서 입맞춤은 이어졌고, 정국의 입술에 묻어있던 태형의 피는 결국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입술을 떼어낸 뒤, 태형은 자신의 왼손등 위에 정국의 왼손을 포갠 뒤, 정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국씨. 저 왼손잡이인데 왼손이 다쳤어요.”

“제가 뭐 도울 수 없을까요?”

“제가 사진 찍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걱정마요. 나만 봐요. 나만.”

 

정국은 밝게 웃는 태형을 보면서 생각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더는 불행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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