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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The last birthday

w. 연 월

 

 

 

 

 

 

 

 그를 처음 보게 된 것은 아마 열 살 때였다. 스치듯이 봤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생일 파티날 초가 꺼지고 멀리서 보였던 그 인영을. 그는 나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당시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몰려와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그 미소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았다. 말을 나눴다든지 손이 스쳤던 것도 아니었다. 단 3초. 내가 그의 눈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해 이후로 몇 년 동안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 바로 그다음 해 그것도 나의 생일날, 선물을 들고 오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차마 즐겁게 보낼 수 없었다. 이제는 혼자인 것이 익숙했다. 학교에 가면 반겨주는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엔 혼자 남았고 그것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내가 너무 우울해하면 부모님도 슬퍼하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충동적으로 자그마한 조각 케이크 하나를 사버렸던 것이. 그렇지만 그 작은 조각에 여섯 개의 초가 모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결국 가장 기다란 초 하나를 꼽고 손을 모았다. 불을 끄기 전엔 항상 소원을 빌어야 한다던 엄마의 말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숨을 깊게 들어 마셨다가 내뱉었다. 초는 힘없이 꺼져버렸고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그래, 내가 뭘 생일을 챙겨. 이만큼 초졸하고 또 외로운 생일이 있긴 할까. 케이크를 들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있는 초콜릿 케이크는 맛깔스러워 보였다. 물론 나에게는 아니었지만. 케이크를 버리기 직전에 잠시 멈칫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러 하얀 접시 위로 떨어졌다.

 

 

 ‘헐.’

 

 

 나밖에 없는 집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놀란 나머지 눈물까지 쏙 들어가 버렸다. 뭐지? 심장이 고요하게 콩콩거리던 것이 점점 빠르게 쿵쿵 뛰어댔다. 돌아볼까? 칼이라도 들고 있으면 어떡하지. 눈을 질끈 감고 뒤를 돌았다.

 

 

 ‘설마 그거 버리게?’

 ‘….’

 ‘야, 꼬맹아. 버릴 거면 나 줘.’

 

 

 아깝게 뭐 하는 거야. 낯선 목소리이지만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눈을 천천히 조금씩 떴다. 오 년만에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때도 봤던 그 따스한 미소. 그때 나는 물었다. 오 년 전엔 왜 그냥 가버렸냐고, 왜 말을 걸지 않았냐고. 그냥, 사람 많은 거 싫어. 다 큰 사람이 그 당시 열다섯이었던 나에게 투덜거렸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왔다. 그런 사람이 무섭게 느껴질 리가 없었다. 나긋나긋하게 눈을 마주치며 말하는 음성이 듣기 좋았다. 꼬맹아, 나는 너 웃는 모습이 좋더라. 턱을 괸 채로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이 간지러웠다. 정체가 뭐예요? 그는 케이크를 볼에 가득 담고 웃었다. 한참을 오물오물 씹더니 꿀꺽 삼키고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음, 글쎄, 생일선물? 그렇게 고민하다가 뱉어낸 말이 겨우 저거라니. 열다섯이었던 나에게 그 해답은 충분하지 않았다. 생일선물이라. 묘하게 어울렸다. 머리도 튀는 핑크색을 하고서 싱긋싱긋 웃어 보이는 게 선물을 받은 것보다 기분이 더 좋았다. 그 당시 표현에 서툴렀던 나는 직접 말로 하지 못하고 툴툴거리기만 했다. 선물은 무슨….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많이 기쁘고 고마워했다는 사실을.

 

 생일이 지나고도 잊을만하면 자꾸 그 핑크 머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루는 초를 사서 불어보기도 했다. 혹시 그가 올까봐. 초를 불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고 차가운 공기만이 주변에 맴돌고 있었다. 진짜 생일선물도 아니고, 대체 뭐야. 1년이라는 기간은 생각보다 더욱 길었다. 365일 중 단 하루뿐인 생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미련한 짓이었다. 그간 조금 변했던 것이 있다면 웃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너 웃는 모습이 좋더라. 그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을지도 모르는 말을 하나하나 다 새겨놓고 있었다. 생일이 다가오기 전부터 디데이를 세다가 하루 전에는 동네의 작은 빵집에 들어가 한참 사투를 벌여야 했다. 생크림 좋아하려나? 아니야, 저번에 초코 좋아했던 거 같은데. 깊은 고민 끝에 결국 가격이 저렴한 조그마한 하트 모양의 생크림 케이크를 선택했다. 12시에 초를 불면 너무 기다린 티가 나지 않을까라는 유치한 이유로 뜬눈으로 밤을 보내야 했다.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하지. 내가 계속 그를 애타게 찾는 이유도, 머릿속에 핑크 머리가 떠오르는 이유도 그 당시에는 정의할 수 없었다.

 

 초에 불을 붙이고 두 손을 모았다. 여유를 부릴 틈도 없이 빠르게 녹아내린 촛농이 초 끝에서 아슬하게 매달려있었다. 무엇을 빌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대충 건강이나 성적, 이런 것들에 대한 소원이었다. 꾸역꾸역 7개의 초를 다 꽂아서 더 빛나게 보였다.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후ㅡ. 금세 꺼져버린 불빛이 지독한 어둠을 만들어냈다.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5, 4, 3, 2….

 

 

 ‘꼬맹아.’

 ‘….’

 ‘오랜만이네.’

 

 

 그의 웃는 모습에 심장께가 간질거렸다. 이제는 퍽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감정은 수없이 많았다. 슬픔, 기쁨, 아픔, 당황스러움. 그런데 그를 보고 나서의 내 느낌은 지금껏 느껴왔던 감정들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회피했었다. 열여섯의 나는 여전히 솔직하지 못했고 사춘기의 시작이었다. ‘이건, 생일선물.’ 대뜸 생일선물이라며 볼에 입을 맞춰줬을 땐 순간적으로 그를 밀어냈다. 새로 느껴지는 감정이 내겐 너무 이질적이어서. 꿈틀꿈틀, 내 안에서 이상한 감정이 일렁였다.

 

 그는 이런 내 행동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머쓱한 듯 뒷머리를 살짝 긁적이던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꼬맹이, 이제 열여섯인가. 방금까지 밝아 보였던 그의 표정이 꽤 어두워졌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줄곧 웃는 모습만 봐왔던 탓에 표정 관리도 못하고 굳은 얼굴을 하는 그가 신경쓰였다. 그때 괜찮냐고 물었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하루를 보내버린 제가 원망스러웠다. 그 이상한 감정이 뭐길래 그를 밀어냈던 건지 다음 해, 그리고 그다음 해에도 차마 그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인정했다. 그를 향한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몇 번 봤다고 그걸 확신하냐 싶겠지만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겨우 몇 번 봤으니까 더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라고. 1년에 한 번꼴로 겨우 볼 수 있는 그는 소유욕도, 그 어떤 욕심도 가지고 살지 않았던 내가 유일하게 계속 붙잡고 싶은 존재였다. 아, 이걸 존재라고 해도 될지.

 

 그래서 나는 계속 밀어내려고 했다. 그를 잊는 것은 어려울지 몰라도 그를 피하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까. 생일날만 조심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 번의 해를 뛰어넘어 열아홉, 십 대의 끝자락인 고삼이었던 나는 올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했다.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지만 다른 날과 다름없이 생각하려고 했다. 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키도 훌쩍 커버리고 젖살도 쪽 빠졌다. 사탕을 물고 있었던 어릴 때와 다르게 지금은 담배를 물고 있었다. 오늘도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담배는 조금씩 천천히 타들어 갔다. 숨을 크게 내쉬면 뭉게뭉게 연기가 흩어졌고 그것은 곧 사방으로 흩어져 흔적을 감추었다.

 

 

 ‘…보고 싶다.’

 

 

 내뱉고도 어이가 없었다. 지금도 미련하게 시계만 보고 있으면서. 아직 반도 줄어들지 않은 담배를 발로 지져 껐다. 아홉 시 십이분. 오늘이 가려면 두시간 사십팔분이 남아있었다. 그에 대한 흔적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지금까지 본 게 전부였다. 그 기억만으로 그를 떠올려야 했고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너무하네. 투덜거림이 섞인 말이 나왔다. 계속 생각나게 해놓고.

 

 

 ‘너무한 건 너지, 꼬맹아.’

 ‘…’

 ‘아니, 이제 꼬맹이가 아닌가.’

 

 

 한참 동안 멍하니 눈을 바라봤다. 내 앞까지 다가온 그와 눈높이가 맞았다. 하나도 변한 모습이 없었다. 그를 처음 봤던 열 살 때부터 쭉. 구 년이 지나는 동안 변해온 것은 오직 나 하나였다. 곧은 시선에서 바라보는 눈이 어색했다. 내게 너무 커 보였던 그가 이젠 바로 눈앞에 있었다.

 

 

 ‘어떻게 왔어요.’

 ‘섭섭하네.’

 

 

 네가 불렀잖아. 전정국, 네가. 정말로 섭섭하다는 듯 축쳐진 눈꼬리가 강아지 같았다. 내가요? 케이크를 먹은 것도 아니었고 초를 불었던 것도 아니다. 보고 싶다는 말만 했지 진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엔 발로 뭉개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된 담배가 놓여있었다. 아. 골때리네. 그를 피하려고 했던 나는 담뱃불을 껐다는 이유로 다시 마주하게 됐다. 오랜만에 봤지만 그를 볼 때 몽글몽글한 느낌은 여전했다.

 

 

 ‘많이 변했네.’

 ‘….’

 ‘그래서, 나 이제 안 봐줄 거야?’

 

 

 보고 싶었는데. 넌 아니야?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그에게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바라봤다. 나 보고 싶었어요? 믿을 수 없어서 재차 물어보니 그가 웃었다. 그의 미소는 예뻤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그를 못 본 시간 동안 철도 들고 성숙해졌으니 당연히 그를 대하는 분위기도 달라졌다. 그때보다도 더 솔직하고 깊은 얘기가 나왔다. 네가 안 보고 싶었으면 내가 여길 왜 왔겠어. 아아, 그를 볼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싫어서도 오글거려서도 아닌 너무 좋아서. 자꾸 숨겨서 뭐할 건데. 피해봤자 뭐가 달라져.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세시간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맛으로 케이크를 골랐다. 케이크 박스를 들고 있는 그의 표정이 꽤 신나 보였다. 누가 보면 내 생일이 아니라 그의 생일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집으로 가는 동안에 얘기는 단 한 순간도 끊기지 않았다. 반 이상은 모두 그가 하는 말이었고 나는 그에 적절한 반응을 해주는 식이었다. 고등학생이 무슨 담배냐는 잔소리를 시작으로 쭉 이어가다가 마지막은 기다렸다는 말이었다. 몇 년 전, 그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초를 불었던 때보다도 지금이 더 부끄러웠다. 이년을 피하다가 담배꽁초 하나 때문에 다시 바로 앞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라곤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야, 빨리 불어.’

 ‘아아, 아직 먹지 마요.’

 

 

 이렇게 손 모아봐요. 그는 투덜거리다가도 가지런히 모은 내 두 손을 흘긋 보고 따라서 손을 모았다. 빌어요. 뭘? 그냥 소원 같은 거요. 그런 거 없는데? 에이, 분위기 깨지 말고. 그런 거 없다면서 눈을 꾹 감고 한참을 있었다. 내가 눈을 뜨고 나서까지도 감고 있길래 어깨를 톡톡 치니 그제야 눈을 슬며시 떴다. 뭘 빌었길래 그렇게 집중해요? 그는 내 말에 헤픈 웃음을 지었다. 비밀인데? 그러는 너는 뭐 빌었는데. 내심 그가 뭘 빌었을지 궁금했던 터라 김이 팍 새버렸다. 내가 빌었던 것은 막무가내로 피해 다녔던 것에 대한 용서와 내 앞에 계속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소원이었다. 나도 비밀이거든요. 후ㅡ, 바람을 불어냄과 동시에 힘없이 초가 꺼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케이크를 먹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옆에 묻은 크림을 손으로 훑어 내 입에 넣었을 때 그의 볼이 빨개지는 것도, 눈꼬리를 반달처럼 휘어가며 웃는 것도 다 사랑스러웠다.

 

 

 ‘이제 십 대 마지막이네.’

 ‘그러게요.’

 ‘…나랑 약속 하나만 해줘.’

 

 

 그렇게 좋아하는 케이크도 옆에 밀어놓은 그가 짐짓 분위기를 잡고 말했다. 뭔데요? 열두 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이 초조해졌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그는 나의 꽉 깨문 입술을 보고 이미 알아차렸을 수도 있었다.

 

 

 ‘일 년 뒤에도 만나겠다고 약속해줘.’

 ‘당연한 걸 왜,’

 ‘지금 장난하는 거 아냐.’

 

 

 또 피하면 나 슬플 거 같거든. 마지막 웃음은 기쁘다기보다 슬퍼 보였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으면서. 괜히 내가 그를 이렇게 만든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약속할게요. 꼭. 그는 확답을 듣고 나서야 원래의 제 미소를 찾고 웃었다. 그의 미소에 번지듯이 따라서 입꼬리를 당겼다. 눈이 마주치고 오랫동안 눈을 마주했다. 점점 얼굴이 가까워지고 그에게 닿으려던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2시. 시곗바늘이 정중앙을 가리키고 있었다.

 

 

 

 

***

 

 

 

 

 “그, 정국아 오늘 밥 같이 먹을래?”

 

 

 아뇨. 저 오늘 바빠서요. 입학 오티 때부터 졸졸 따라다니던 선배가 성가시게 굴었다. 매번 여러 핑계를 대며 거절을 했지만 오늘 바쁘다는 말은 딱히 거짓이 아니었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방을 들었다. 뒤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지만 아무렴 뭐, 상관없었다. 답답함에 삐뚤어져서 담배나 피워댔던 고등학교 시절과 다르게 지금은 꽤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순식간에 지나버린 날들이 아쉽기도 했다. 담배에 손을 데려다가도 떠오르는 한 사람 때문에 담배 대신 사탕을 손에 쥐었다. 지금은 유치하게 굴었던 그때와 달랐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은 나와 그, 단둘만 알고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인기가 많았고 그만큼 좋아해 주는 사람도 많았다. 저녁에 잡혀있던 술 약속도 바쁘다는 말 한마디면 넘어갔다. 인생 뭐 별거 없어. 뭉그적뭉그적 근처 가게에서 라이터 하나를 샀다. 어릴 때처럼 디데이를 세면서 하루를 보냈다. 이런 모습이 꽤 웃겼다. 그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했다. 무슨 말을 먼저 할까. 생각하기도 전에 행동이 빨랐다. 꺼진 라이터를 보다가 대충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나 왔어.”

 

 

 이번엔 내가 먼저 그를 향해 웃었고 그는 곧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일 있어요? 걱정스레 물어도 고개만 도리도리하기에 성큼성큼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약속 지켰어요. 그러니까 나 봐줘요. 몇 번을 타이른 후에야 겨우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뭔가 모르게 그가 조금 달랐다. 다른 날보다 축 처져있는 느낌. …사진 찍으러 갈래? 오랜만에 만나서 갑자기 사진을 찍으러 가자는 말이 의아하긴 했지만 그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상당히 조급해 보이는 그는 길도 모르면서 이곳저곳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겨우 들어온 곳은 작은 사진 기계가 있는 곳이었다. 갑작스럽게 찍은 사진을 보며 툴툴거린 나와 다르게 그는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이거 예쁘게 나왔다. 그가 가리킨 사진 속에는 같이 브이를 한 채로 웃고 있는 우리가 있었다. …예쁘긴 하네. 좋기도 하면서 자꾸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 많은 곳은 싫다면서 굳이 이런 곳을 자처해서 온 것도 난데없이 사진을 찍자는 것도, 억지로 웃음을 지어내고 있는 것도 신경 쓰였다.

 

 

 “이거면 계속 기억할 수 있겠다, 그치.”

 “어차피 계속 볼 거잖아요.”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는데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무 눈에 띄게 굳어버린 탓에 나까지 말문이 막혔다. …어디 가요? 자꾸 불안한 것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하던 그가 아까처럼 다시 고개를 숙였다. 왜요, 왜. 무슨 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게 딱히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건 금방 눈치챘다. 눈물만 흐르지 않고 있을 뿐이었지 울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간, 너무 빠르다. 매번 내 기분에 맞춰주고 달래주던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색했다.

 

 

 “케이크 사갈까?”

 

 

 응, 그렇게 해요. 위태로운 그의 손을 잡고 걸었다. 손을 떨림이 점점 잦아들었다. 말이 그렇게 많았으면서 오늘은 단 한마디도 먼저 꺼내지 않았고 오히려 전과 반대의 상황이 됐다. 눈치가 전혀 없지 않은 이상, 알 수 있었다. 아니길 부정하면서 애써 덜덜거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왜 갑자기 이러는 건데. 어쩌면 그와 나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피하고 있었다. 작년에 나를 피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조차도. 항상 먹었던 것처럼 아담한 케이크 하나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했다. 전과 다르게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어색하게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소원, 빌자.”

 

 

 케이크에 꽂힌 두 개의 초에 불이 붙고 그가 손을 모았다. 빌고 싶은 소원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참 동안 또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뜨고 내가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보고 싶었는데, 나 좀 봐봐요. 눈을 마주하고 손을 꽉 붙잡은 후에야 그가 안정을 찾았다. 무슨 소원 빌었어요? 나는 그가 또 비밀이라며 전처럼 답을 회피하리라 생각했다. 우물쭈물 말하기를 망설이던 그가 내 손을 더 꽉 붙잡았다.

 

 

 “너 진짜 잘 컸다.”

 “….”

 “이제 스무 살이네.”

 

 

 그는 다른 대답을 내뱉었다. 눈을 피하면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의 양 볼을 붙잡고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계속 기다렸다. 용기를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이제 못 만나. 예상했던 말인데 직접 들으니 생각처럼 표정 관리가 잘 안 되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를 끌어안았다. 품에 안기도 조심스러운 사람이어서 부드럽게 어깨를 토닥였다.

 

 

 “…나는 너무 좋았어요, 항상.”

 “….”

 “내 최고의 생일 선물이잖아요.”

 

 

 그가 눈물을 머금고 있는 상태로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그게. 이제야 조금 편해진 분위기였다. 사실은 나도 전혀 괜찮지 않았다. 어차피 맞이해야할 일이라면,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어야하니까.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

 “그게 내 소원이야.”

 

 

 시간이 이분 남짓 남아 있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렇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소원 빌었어요.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엄지로 천천히 쓸었다. 우리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다음엔 꼭 평생 함께하게 해달라고.

 

 꼭, 이뤄질 거예요.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드디어 갈 길을 찾아 마주한 입술이 뜨거웠다.

 

 

 “생일 축하해, 정국아.”

 

 

 깜깜한 방안을 유일하게 밝히고 있던 촛불의 불빛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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