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를 잃은 이유
*
며칠 전, 오로지 형을 위한 노래를 녹음했다. 들려주고 싶은 노랫말이 담긴 잔잔한 느낌의 외국 곡이었다. 녹음을 마치고 도와준 분에게 따로 음악 파일을 받았다.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형에게 제일 먼저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나는 이어폰을 끼운 핸드폰을 들고 형 방으로 무작정 향했다. 노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와도 괜찮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닫힌 문을 열었다. 외출복 겸 잠옷을 걸친 형이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길게 기른 앞머리가 눈을 반쯤 덮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예쁜 얼굴에 순한 웃음이 퍼졌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물었다. 형이 저렇게 웃을 때면 마음이 이상해졌다.
이어폰을 건네자 형이 옆머리를 살짝 귀 뒤로 넘겼다. 조심스럽게 귀에 꽂아주고 노래를 틀었다. 나머지 한 쪽은 내 귀에 꽂았다. 외국 노래로 한 이유는 나름대로 돌려 말하기 위함이었다. 형이 살포시 눈을 감고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노래를 감상했다. 마지막 반주가 흘러나오고 형의 입에서 나온 첫 말은 ‘아, 좋다.’였다. 나는 웃음을 숨길 수 없어 괜히 고개를 돌렸다. 형이 하품을 했다. 졸린 형을 마주보고 있으니 왜인지 용기가 생겼다. 지금 형은 잠에 취한 상태니까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행동파인 나는 누우려는 형의 몸을 급하게 붙잡았다. 형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다시 눈을 풀었다. 정국아, 나 졸려. 형의 입에서 불리는 내 이름이 너무도 다정해서,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오래 된 짝사랑은 해가 지면 달이 뜨듯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졸려하는 눈을 또렷이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는 편지처럼 마음을 전했다. 너를 많이 좋아한다고, 아주 오래 좋아해서 이제는 네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어색하다고. 형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이 다 달아난 것 같았다. 차라리 꿈이라고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게 잠에 들기를 바랐는데, 모든 게 내 바람대로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형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잘만 마주치던 눈을 도저히 못 쳐다보겠어서 고개를 툭 떨궜다. 괜히 말했다, 라는 후회의 문장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조용히 있을 걸.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괜찮은데.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려고 했다.
“왜, 왜 울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형이 다짜고짜 내 볼을 꾹 누르며 어르고 달래기를 시작했다. 연습생 때부터 눈물이 많던 나를 달래는 형만의 방법이었다. 아니 방법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우는 소리를 내며 본인의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는 게 다였다. 그런데도 나는 형이 그러면 그새 눈물을 멈췄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 번 달래주기 시작하니 그간 쌓아뒀던 감정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다가왔다. 누가 봐도 서러울 정도로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빨개진 눈가를 손등으로 닦고, 또 닦았다. 형이 속상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직 울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해요. 끅, 많이요.”
형이 말없이 나를 안았다. 로션 냄새가 살 냄새와 섞여 맡아졌다. 등을 토닥일 때마다 살짝 씩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서 옅은 샴푸 냄새도 났다. 나는 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멈출 줄 모르는 눈물을 계속해서 흘렸다. 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이 왜 좋아?”
내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또 입을 열면 아이처럼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알았어, 알았어. 다 젖은 어깨가 찝찝하지도 앉은 지, 형은 내가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가만 기다려 주었다. 어느덧 형의 생일이 십 분 가량 남아 있었다. 형이 시계를 확인하고 내 몸을 떼어냈다. 나는 부운 얼굴로 마주볼 자신이 없어 눈을 피한 채 입을 열었다.
“이래서 좋다, 저래서 좋다 하는 건 좋아질 때나 하는 거지 좋아한 뒤에는 사라지고 없어요. 이래서 형이 좋은 게 아니라 형이라서 이 부분도 좋은….”
쪽. 가볍게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졌다. 붉고 얇은 입술이 우느라 퉁퉁 부은 내 입술 위로 겹쳐졌다. 가족 외에 처음 해보는 입맞춤이었다. 한 순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형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웃었다. 나는 얼빠진 얼굴로 입술을 매만졌다. 아직 눈물이 흥건히 묻은 볼을 손등으로 벅벅 닦았다. 웃음이 나왔다. 멋대로 씰룩거리는 입 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형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1분 남았어. 내 생일.”
마침 시곗바늘 숫자 12를 가리켰다.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
“생일 축하해요.”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정국아. 고맙다는 인사에 옅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던 자리를 정리했다. 형이 나가려는 내 손을 붙들었다. 물음표를 띄운 채 형을 내려다 봤다. 새삼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게 올라간 속눈썹이, 왼쪽 눈에만 생긴 쌍꺼풀이, 살짝 태운 까무잡잡한 피부가. 모든 게 형이라서 예뻤고, 형이라서 좋았다.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 또 한 번 입술을 깨물었다. 형이 다시 졸려진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나 잘 때 까지만 같이 있으면 안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돼요. 불을 끄고 은은한 빛을 내는 조명을 켰다. 성인 둘이 눕기에는 넉넉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형도, 나도 개의치 않아 했다. 그저 살끼리 닿은 부분에 모든 신경을 준 채 두 눈만 굴렸다. 함께 잠을 청한 적은 많았지만 이런 묘한 분위기 속에서 자는 것은 처음이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침묵을 깬 쪽은 내가 아닌 형이었다. 낮은 음성이 듣기 좋았다. 말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의 온도가 나를 적셨다.
“나도.”
“응?”
“아, 나도 좋아한다고.”
형이 말끝을 살살 늘렸다. 어쩜 한 순간도 빼먹지 않고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굳이 귀여워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작은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귀여움이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몸을 살짝 틀자 어둠 속에서 시선이 얽혔다. 공기가 간지럽게 느껴졌다. 더 이상 일방적인 마음도 아니었다. 나는 형이 그랬던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말캉한 느낌이 입술 전체에 퍼졌다. 형이 뒤로 돌아 누웠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이제 가도 돼요?”
내 물음에 도로 몸을 돌린 형이 내 허리 위에 다리를 턱 올렸다. 나는 무겁다며 괜히 숨이 안 쉬어지는 척 굴었다. 형이 치, 하는 입소리를 내더니 곧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뱉었다. 잠에 든 것 같았다. 몸을 조심히 돌려 형과 마주 보게끔 누웠다. 잠든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 이불을 덮어주었다. 형이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좋아해요.”
**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어제 밤을 새운 탓에 너무 피곤했지만 그래도 들어와도 괜찮다고 답했다. 어차피 정국이를 보면 기분이 나아질 테니까. 정국이는 핸드폰을 들고 멀뚱히 서 있었다. 이어폰을 건네기에 좋은 곡이라도 찾았나 싶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꽤 긴 전주를 듣던 나는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티 나지 않게 몸을 움찔했다. 다행히 정국이는 눈치 채지 못 한 것 같았다. 그 애의 입에서 나를 향한 고백이 흘러나왔을 때, 내 심장은 발끝을 스쳤다 다시 올라왔다. 살면서 이렇게 가슴 떨린 적은 처음이라고 해도 거짓이 아닐 만큼, 딱 그만큼 떨렸다. 정국이가 울면 나도 울고 싶어진 적이 많았다. 물론 내가 울면 정국이가 무너지듯 울어버릴 거란 걸 알기에 대부분 참아냈다. 몸이 들썩일 정도로 울면서 힘겹게 내뱉는 말이 나를 많이 좋아한다는 말이라니. 나는 정국이를 안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혼자 마음고생 많이 했을 정국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해줄 걸. 그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정국이 스스로가 자신을 달랠 때까지 가만 기다려주는 게 다였다. 나는 보채지 않고 상황을 받아들였다. 서서히 거친 숨소리가 고르게 변해갔다. 좋아하는 데 이유는 없다는 흔한 말이 정국이의 입을 거쳐서 나오니 세상 그 무엇보다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입술을 정국이의 입술에 살며시 가져다 댔다. 부들부들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을 꽉 오므리고 빠르게 떨어졌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붉어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해주고 싶은 말은 너만 나를 좋아하던 게 아니었다고, 나도 너를 많이 좋아한다고. 이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